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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성의 20번 이동국, 박수 칠 때 떠나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이동국 선수가 K리그 4년 연속 우승과 함께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지난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 대구 FC의 리그 최종전은 여러 의미로 역사적인 무대였습니다. 첫 번째로는 전북 현대 모터스가 대구 FC를 2-0으로 꺾으면서 K리그 최초로 4년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우승이 K리그 최다인 8번째 우승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만 12년을 뛴 이동국 선수가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무대였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 여파에도 거리두기를 지키며 경기장을 찾은 1만 관중은 백전노장 이동국 선수에게 진심을 다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라이온 킹을 보내며

 

이날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과 관중들은 은퇴하는 이동국 선수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구단은 이동국 선수의 등번호와 이름이 들어간 클래퍼를 관중에게 배포했고, 경기장에는 남녀노소 이동국 선수의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넘쳐났습니다.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입장할 때는 영화 <라이온 킹>의 OST인 'Circle Of Life'를 틀었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별명이 ‘라이온 킹’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이벤트였습니다. 경기 후 이동국 선수는 “늘 휴대폰 벨소리로 쓰는 곡이 몸을 풀 때 흘러나와 울컥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기 중에는 이동국 선수의 등번호인 20번을 기념해 전반전 20분 경과하는 시점에 전관중이 기립해 2분간 박수를 보내는 이벤트를 펼쳤습니다. 보통 구단에 크게 기여한 선수의 은퇴식은 하프타임에 이뤄지곤 하지만, 이동국 선수의 은퇴식은 더 성대하고 예우를 갖춰서 이뤄져야 한다는 구단의 판단에 아예 경기 종료 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마치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전북 현대 모터스의 우승과 함께 이동국 선수의 멋진 은퇴식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은퇴식이 시작되고, 이동국 선수가 그라운드 중앙에 서자 동료들이 일렬로 그를 바라보고 서 예의를 갖췄습니다. 그라운드에는 이동국의 초대형 유니폼(17m×18m)이 등장했습니다. 보관이 까다로운 대형 유니폼은 향후 업사이클링(Upcycling) 방식으로 굿즈를 만들 예정이죠. 전북 현대 모터스 백승권 단장은 굿즈 판매로 나오는 수익금은 이동국 선수와 얘기해 좋은 곳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경기를 진행할 때와 비교해도 전혀 줄지 않을 만큼 자리를 지켜 이동국 선수의 은퇴식을 함께했습니다. 특히 감동이 밀려오는 순간에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이동국 선수에게 화답하며 어두운 경기장을 빛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직접 그라운드로 내려가 이동국에게 감사패를 전달했고, 허병길 전북 현대 모터스 대표이사는 이동국 선수의 유니폼이 담긴 액자를 선물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 선수의 등번호 20번을 영구결번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팬을 의미하는 12번 외에 다른 번호가 영구결번인 것은 이동국 선수가 최초였습니다. 전북 현대 모터스는 1994년 팀 창단 이후 역대 5명에게 등번호 20번을 부여했습니다. 고성민, 김판곤, 이경수, 에드밀손, 김인호 선수가 이 번호를 달고 활약했죠. 이제 앞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20번 등번호를 달고 뛰는 선수는 볼 수 없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오늘 그라운드에 들어오면서 20번이라는 유니폼을 보면서 울컥했다”면서 등번호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날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동국 선수는 올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장해 풀 타임 경기를 뛰었습니다. 마지막 골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자신에게 마지막 주어진 90분을 후회 없이 뛰면서 2-0 승리를 도왔죠. 이동국 선수는 "은퇴식 내내 다리에서 경련이 올라왔고, 추워서 몸이 힘들었다"면서도 "하지만 모든 분이 지켜보고 있어서 내색 안 했다. (끝까지) 내 정신이 몸을 지배했다"고 말했습니다.

화려한 은퇴식의 의미는?

 

이날 이동국 선수의 은퇴식은 전북 현대 모터스가 왜 좋은 성적을 거두는지, 왜 많은 우승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바로 베테랑 선수를 향한 예우입니다. 후배 선수가 전북 현대 모터스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자신도 품격 있는 은퇴를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전북 현대 모터스는 물론 다른 K리그 팀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타 팀에서도 이날 이동국 선수가 누렸던 것과 같은 정성 가득한 은퇴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K리그에서 MVP, 신인왕,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석권하고 K리그 통산 최다 득점과 ACL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이동국 선수,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앞으로 지도자로 성장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이동국의 꽃길을 응원합니다.